은퇴 후 시간이 생기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해외에서 한 달 정도 살아보면 어떨까?”
며칠 동안 관광지를 돌아보고 오는 여행과는 조금 다르다. 아침에 일어나 동네 카페에 가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익숙한 길을 산책하고, 때로는 아무 일정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말 그대로 여행지가 아니라 잠시 ‘내가 사는 곳’으로 외국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나 역시 여러 나라에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일하며 오랫동안 해외생활을 해왔다. 일본에서 공부했고 영국에서 연구생활을 했으며, 필리핀에서는 오랜 기간 생활했다. 이후 아부다비에서도 근무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짧은 여행으로 보는 나라와 실제로 생활하며 보는 나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은퇴 후 해외 한 달 살기, 해볼 만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한 번쯤 해볼 만하다. 다만 ‘긴 여행’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짧은 해외생활을 시험해 보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여행과 한 달 살기는 무엇이 다를까?
일주일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해 보자.
아침 일찍 일어나 관광지를 찾아가고, 유명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사진을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보려다 보니 일정이 자연스럽게 바빠진다.
한 달 살기는 다르다.
오늘 가지 못한 곳은 내일 가면 된다. 비가 오면 숙소에서 쉬어도 된다. 유명 관광지를 하루에 여러 곳 돌아다닐 필요도 없다.
오히려 이런 일상이 생긴다.
동네 슈퍼마켓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고, 자주 가는 카페가 생기고, 어느 시간에 길이 막히는지도 알게 된다. 관광객으로 방문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도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여행이 그 나라를 ‘구경하는 것’이라면, 한 달 살기는 그 나라의 일상 속에 잠시 들어가 보는 경험에 가깝다.
이 차이가 한 달 살기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은퇴 후라서 오히려 가능한 여행이 있다
직장에 다닐 때 해외에서 한 달을 보내기는 쉽지 않다.
항공료나 숙박비보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다.
일주일 휴가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한 달 동안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을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월요일에 반드시 출근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휴가 날짜에 맞춰 여행 일정을 압축할 필요도 없다.
나는 이것이 은퇴 후 삶이 주는 중요한 자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처럼 하루에 관광지 다섯 곳을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오전에 한 곳을 보고 오후에는 카페에서 쉬어도 된다. 어떤 날은 아무 일정 없이 동네를 걸어도 된다.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은 단순히 쉬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뜻이 아니다.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달 살기의 진짜 장점은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은퇴 후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
문제는 처음부터 너무 큰 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 은퇴생활을 해야 할까?”
“집을 구해야 하나?”
“몇 년 정도 살아야 하나?”
하지만 실제로 살아보지 않은 나라를 인터넷 정보만 보고 장기 거주지로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오히려 한 달 살기를 ‘해외생활의 시험운전’처럼 활용하는 방법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 달 정도 살아보면 여행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트가 가까운지, 식사가 입에 맞는지, 교통은 편리한지, 날씨가 몸에 맞는지, 생활비는 어느 정도인지, 혼자 생활해도 불편하지 않은지 등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특히 50·60대 이후에는 유명 관광지가 얼마나 많은가보다 내가 매일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가가 훨씬 중요할 수 있다.
한 달을 살아보고 좋으면 다음에는 두 달을 살아볼 수도 있다.
맞지 않는다면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를 찾아보면 된다.
그래서 한 달 살기는 큰 결정을 하기 전에 해볼 수 있는 비교적 작은 실험이다.
막상 한 달을 살아보면 불편한 점도 보인다
물론 한 달 살기가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행에서는 며칠 참으면 되는 불편함도 한 달이 되면 생활 문제가 된다.
숙소의 작은 불편도 계속 신경 쓰일 수 있고, 매일 외식을 하다 보면 한국 음식이 생각날 수도 있다. 빨래와 청소도 해야 하고, 인터넷이나 교통 문제도 직접 해결해야 한다.
처음에는 새롭고 재미있던 생활이 2~3주 지나면서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혼자 떠난 경우에는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특히 중장년이라면 몇 가지는 젊은 여행자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 병원과 약국은 가까운가?
- 엘리베이터가 있는 숙소인가?
- 마트와 식당까지 걸어갈 수 있는가?
- 대중교통이나 택시 이용이 편리한가?
- 너무 덥거나 추운 날씨는 아닌가?
- 한국의 가족과 연락하기 쉬운가?
- 한 달 동안 생활할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
한 달 살기는 낭만적인 여행이면서 동시에 실제 생활이다.
이 점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준비가 쉬워진다.
처음부터 한 달을 채워야 할 필요는 없다
‘한 달 살기’라는 이름 때문에 반드시 30일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처음이라면 2주나 3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기간이 아니라 관광 일정에서 벗어나 실제 생활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특히 해외 자유여행 경험이 많지 않다면 처음부터 먼 나라에서 한 달을 보내는 것보다 이동이 비교적 쉽고 생활환경을 파악하기 좋은 곳에서 짧게 시작하는 편이 부담이 적다.
첫 번째 체류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할 필요도 없다.
한 번 경험하고 나면 다음에는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 된다.
나는 숙소 위치가 중요한 사람인지, 날씨가 중요한 사람인지, 음식이 중요한 사람인지, 교통이 중요한 사람인지도 직접 살아봐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첫 한 달 살기의 목적은 완벽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해외생활의 조건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가 좋을까?
아마 여기까지 읽으면 가장 궁금한 질문이 이것일 것이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할까?”
정답은 하나가 없다.
누군가에게 좋은 도시가 나에게는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달 살기 장소를 고를 때는 관광지의 유명세보다 다음 조건을 먼저 보는 것이 좋다.
① 비행시간과 이동 편의성
② 숙소 비용
③ 한 달 생활비
④ 음식
⑤ 기후
⑥ 의료 접근성
⑦ 교통
⑧ 치안과 생활환경
⑨ 인터넷과 통신
⑩ 언어
50·60대 이후에는 특히 ‘싸고 유명한 곳’보다 ‘내가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블로그에서도 앞으로 필리핀, 일본을 비롯해 여러 나라와 도시를 하나씩 살펴볼 예정이다.
하지만 첫 한 달 살기라면 인터넷에서 ‘한 달 살기 최고의 나라’를 찾기보다 내 생활 습관과 여행 경험에 맞는 나라를 찾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한 달 살기 전에 먼저 계산해야 할 것은 돈이다
한 달 살기를 생각하면 가장 현실적인 질문은 비용이다.
항공권만 사면 끝나는 여행이 아니다.
숙소, 식비, 교통비, 통신비, 여행자보험, 관광비, 세탁비와 생활용품 등 여러 비용이 들어간다.
나라와 도시, 숙소 수준, 외식 횟수에 따라 전체 비용 차이도 상당히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본 “한 달에 얼마면 가능하다”는 숫자 하나만 믿고 결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
내가 어느 수준의 숙소를 원하는지, 하루에 얼마 정도를 식비로 사용할지, 관광이나 골프 같은 활동을 얼마나 할 것인지에 따라 예산이 달라진다.
한 달 살기의 첫 번째 현실적인 준비는 나라를 고르는 것보다 ‘내가 한 달에 얼마까지 사용할 수 있는가’를 정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별도의 글에서 실제 계산 방법을 하나씩 살펴보려고 한다.
은퇴 후 한 달 살기, 누구에게 잘 맞을까?
모든 사람에게 해외 한 달 살기가 맞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
- 짧은 패키지여행보다 천천히 여행하고 싶다.
- 은퇴 후 새로운 생활 경험을 해보고 싶다.
- 장기 해외생활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시험해 보고 싶다.
- 관광지만 보는 여행에서 벗어나 현지의 일상을 경험하고 싶다.
-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내 속도로 여행하고 싶다.
- 앞으로 여러 나라에서 한 달씩 살아보고 싶다.
반대로 익숙한 생활환경을 떠나는 것이 큰 스트레스이거나, 건강과 이동 문제 때문에 장기간 해외에 머무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짧은 체류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한 달 살기는 남들이 한다고 따라 해야 하는 유행이 아니다.
내 삶에 맞으면 선택하고, 맞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하나의 생활 방식이다.
내가 생각하는 은퇴 후 한 달 살기
나는 해외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면서 한 가지를 배웠다.
한 나라를 이해하려면 관광지만 보는 것과 그곳에서 생활해 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
아침에 집을 나서고, 식사를 해결하고, 장을 보고, 사람들과 부딪히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그 나라가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동시에 나 자신도 알게 된다.
나는 어떤 환경을 좋아하는지, 어느 정도의 불편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무엇이 있어야 마음이 편한지 말이다.
그래서 은퇴 후 해외 한 달 살기의 가장 큰 가치는 단순히 ‘한 달 동안 외국에 있는 것’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은지 작은 규모로 시험해 보는 것에 가깝다.
처음부터 이민이나 장기체류를 생각할 필요도 없다.
한 도시에서 한 달을 살아보고 돌아오면 된다.
좋았다면 다시 가면 되고, 맞지 않았다면 다른 곳을 찾아보면 된다.
은퇴 후 해외 한 달 살기, 정말 해볼 만할까?
내 대답은 “그렇다. 다만 여행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을 한 달 동안 시험해 본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더 의미가 있다.”이다.
그리고 처음이라면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가 없다.
한 나라, 한 도시, 한 달.
그 정도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